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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원

마지막으로 생각을 바꾼 게 언제였나요

읽는 시간 약 2분

마지막으로 생각을 바꾼 게 언제였나요? 큰 신념이 아니어도 됩니다. 싫어하던 음식이 어느 날 괜찮아졌다거나, 몇 년째 고집하던 출근길을 바꿨다거나 하는 정도 말입니다.

막상 떠올리려 하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꽤 자주 바꾸면서도 바꾼 순간은 금방 지워 버립니다. 지금의 생각이 처음부터 내 생각이었던 것처럼요.

어쩌면 그 순간이 그다지 기분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일지도 모릅니다. 회의에서 반대하다가 끝에 가서 손을 든 날, 퇴근길이 어딘가 개운하지 않았던 적이 있을 겁니다. 설득당했다는 느낌, 처음 한 말을 거둬들였다는 민망함. 우리는 생각을 바꾸는 장면을 '졌다'는 말과 너무 가까이 붙여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회의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천천히 되감아 보면 어떨까요. 몰랐던 숫자를 들었을 수도 있고, 그 일을 직접 해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뀐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내가 가진 정보였습니다. 들어갈 때보다 조금 더 알고 나온 셈입니다.

회의실 밖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밤마다 윗집 발소리에 짜증이 나던 사람이, 그 집에 갓 태어난 아기가 있어 어른이 아기를 안고 거실을 서성인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 봅시다. 소리의 크기는 그대로인데, 그 소리를 듣는 마음이 달라집니다. 누가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가 도착했을 뿐입니다.

물론 모든 변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더 다투기 싫어서, 피곤해서, 분위기에 밀려서 접은 생각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바뀌었다기보다 잠시 내려놓은 것입니다. 내려놓은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비슷한 장면이 오면 다시 올라옵니다. 둘을 가르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무엇을 알게 돼서 바뀌었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바뀐 생각이고, 그 칸이 비어 있으면 아직 내려놓은 생각입니다.

이 구분이 쓸모 있는 곳은 의외로 다른 사람과 마주 앉았을 때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나도 저쪽처럼 생각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상대를 한 번에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상대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예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방향을 뒤집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단단히 붙들고 있는 생각도,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온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기다려 주고 있는지, 답답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자리가 막다른 곳은 아니라는 것만은 압니다. 우리도 그런 자리를 몇 번은 지나왔으니까요.

생각해 볼 질문

지금 확신하는 생각 가운데,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바뀔 수도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바뀔 조건을 미리 적어 두면, 그 이야기를 만났을 때 알아보기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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