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다른 기억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같은 장면을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
오랜만에 모인 동창들 사이에서 수학여행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 보겠습니다. 한 친구가 말합니다. “그때 너 버스에서 계속 울었잖아.” 다른 친구가 손을 내젓습니다. “무슨 소리야, 운 건 너였어. 지갑 잃어버렸다고.”
가만히 듣던 다른 친구는 또 다르게 기억합니다. 그날은 비가 와서 바다 근처에도 못 갔다는 겁니다. 모두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숙소에 묵었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장면은 제각각입니다.
이럴 때 대화는 쉽게 판정으로 흘러갑니다. 누구 기억이 맞는지, 사진이 남아 있는지, 누가 착각하고 있는지. 사진 한 장으로 날씨는 확인될지 몰라도, 그날 누가 더 서러웠는지까지 가려 주지는 않습니다.
기억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하루를 보내도 사람마다 붙잡아 둔 것이 다릅니다.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그날은 지갑의 날이었을 것이고, 바다를 기다리던 사람에게는 비가 그치지 않던 날이었을 겁니다. 각자 자기에게 중요했던 것을 챙겨 왔고, 나머지는 흐릿해졌습니다. 그렇게 보면 서로 다른 기억은 틀린 답이라기보다, 같은 날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본 기록입니다.
그래서 “아니야, 그게 아니라” 대신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때 너한테는 어땠어?” 이 질문은 사실을 따지지 않습니다. 대신 상대의 자리에서 그날을 다시 보게 해 줍니다. 그 대답에서 오랫동안 몰랐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지갑 때문에 운 줄 알았던 친구가, 사실은 낯선 곳에서 혼자 남겨질까 봐 무서웠다는 이야기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사실이 중요한 때도 있습니다. 약속한 날짜나 빌려준 돈처럼 어느 한쪽이 분명히 맞아야 하는 일이라면, 기록을 찾아보는 게 맞습니다.
다만 오래된 수학여행의 하루처럼, 정답을 가려도 얻을 것이 별로 없는 기억이라면 어떨까요. 누가 울었는지를 끝내 정하지 않고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아두는 것. 그것도 그날을 함께 기억하는 한 가지 방법일지 모릅니다.
생각해 볼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