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 나이 때, 무엇을 고민하셨어요?
명절 저녁상이 정리될 무렵, 누군가의 요즘 이야기 끝에 꼭 한 번은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때는 그런 거 없었어.” 식탁의 대화는 대개 거기서 방향을 잃습니다.
듣는 쪽은 지금 사정을 모른다고 느끼고, 말하는 쪽은 그때의 고생을 몰라준다고 느낍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시절의 조건을 상대가 이미 안다고 여기고 말합니다. 그래서 같은 말을 주고받아도 서로에게 닿지 않습니다.
이 대화를 다르게 여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제 나이였을 때, 무엇을 제일 고민하셨어요?”
기준이 '요즘'과 '옛날'에서 '같은 나이'로 바뀌면 비교가 줄어듭니다. 대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나이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누구를 책임지고 있었는지, 하고 싶었는데 못 한 일은 무엇이었는지. 비교는 누가 더 힘들었는지를 가리지만, 이야기는 그 사람이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때는 그랬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지금을 깎아내리려는 말이라기보다, 그때 고를 수 있는 길이 그것뿐이었다는 설명일 때가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맥락을 알면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동의와 이해는 서로 다른 일입니다.
듣는 동안 참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고쳐 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건 요즘 같으면 큰일 나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이야기는 다시 비교로 돌아갑니다. “그 결정은 어떻게 내리셨어요?”, “그때 누가 제일 도움이 됐어요?”처럼 그 시절 안에서 묻는 질문을 이어 가면, 판단은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의 시간을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 묻기 어려운 사정도 있습니다. 이미 곁에 안 계시거나, 관계가 편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직장 선배, 친척 어른, 오래 다닌 가게의 주인처럼 나보다 한 세대쯤 앞서 걸어온 누구에게 물어도 됩니다. 중요한 건 혈연이 아니라, 상대가 나와 같은 나이를 먼저 지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대답이 짧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는 말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 대답은 질문이 실패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그 자체로 꽤 많은 것을 말해 주는 대답일까요?
생각해 볼 질문